2026년 ‘위기아동청년법’ 시행…가족돌봄 아동·청년 국가 지원 법적 기반 마련
[시민의소리=특집팀] 학교 수업이 끝났다고 하루가 끝나는 아이들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 아픈 부모와 조부모를 돌보고, 어린 동생의 밥을 챙기며 때로는 생활비까지 걱정한다. 과거 ‘소년·소녀가장’으로 불렸던 아이들의 어려움은 이제 ‘가족돌봄 아동·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2026년 3월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아이가 가족을 책임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가 아이와 그 가족을 함께 책임지는 촘촘한 지원이다.
1. 학교가 끝나면 ‘학생’에서 ‘보호자’가 되는 아이들
또래 친구들에게 방과 후 시간은 학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고 꿈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가족돌봄 청소년에게 학교 종소리는 또 다른 일의 시작을 알린다.
집에 돌아가 몸이 불편한 부모나 조부모의 식사를 챙기고 약을 준비한다.
거동이 어려운 가족의 일상생활을 돕기도 한다. 어린 동생이 있다면 식사를 준비하고 숙제까지 살펴야 한다.
가족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생활비 부담까지 떠안기도 한다.
정부도 이제 이들을 단순히 ‘효심 깊은 아이’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2026년 3월 26일 시행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은 34세 이하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가족에게 간호·간병, 일상생활 관리 등의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을 ‘가족돌봄 아동·청년’으로 명시했다.
문제는 돌봄이 장기화될수록 청소년 자신의 학업과 진로, 친구관계와 휴식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가족을 사랑해서 시작한 돌봄이 어느 순간 아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가족을 돌보는 착한 아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무게
가족돌봄 청소년에게 가장 위험한 시선 가운데 하나는 이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아픈 부모를 돌보고 할머니·할아버지를 간병하는 청소년을 보면 주변에서는 흔히 “기특하다”, “철이 일찍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뒤에는 한창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성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현실이 숨어 있다.
돌봄은 식사를 차려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병원에 함께 가고 약을 챙기며 집안일을 하고, 가족의 상태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활비와 병원비까지 걱정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역시 가족돌봄 아동·청년들이 기존의 저소득층이나 근로능력 취약자 중심 복지정책에서 충분히 지원받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에게 돌봄 책임을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청소년이 가족을 도울 수는 있지만, 한 가정의 돌봄과 생계를 책임지는 마지막 사람이 청소년이어서는 안 된다.
3. 공부·취업·친구보다 먼저 ‘우리 집 걱정’
가족돌봄 청소년의 문제는 오늘 하루의 고단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돌봄 시간이 길어지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고 진학이나 취업 준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래 관계와 사회활동에 사용할 시간도 부족해진다.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가족의 병원 일정과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가족돌봄 문제는 복지정책 하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아픈 가족에게는 돌봄서비스가 필요하고, 청소년에게는 학업·진로·경제·심리·생활지원이 함께 연결돼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일상돌봄 서비스’는 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을 앓는 가족을 돌보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돌봄청년 등을 대상으로 재가 돌봄·가사, 식사·영양관리, 심리지원 등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청소년의 돌봄을 지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이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4.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아이부터 찾아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가족돌봄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자신이 복지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 있다. 집안 사정을 친구나 교사에게 알리는 것이 부끄럽거나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해 어려움을 감추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신청을 기다리는 복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복지기관 등이 가족돌봄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적절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2026년 시행된 위기아동청년법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여기에는 위기아동·청년의 발굴과 맞춤형 통합서비스 제공 방안 등이 포함되도록 했다.
복지의 출발점은 “왜 신청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왜 우리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느냐”가 되어야 한다.
5. ‘가족을 책임지는 아이’에서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으로
가족돌봄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다.
아픈 가족에게 실제 돌봄서비스가 제공돼야 하고, 청소년에게는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고 진로를 준비할 시간이 돌아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심리상담과 교육·장학·취업지원까지 이어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청년 지원 과정에서 자기발전계획 수립, 자기돌봄비, 일상돌봄서비스와 심리지원뿐 아니라 민간 자원을 활용한 교육·장학, 법률, 금융·재무상담, 일자리 지원 등을 연계해왔다.
정책의 최종 목표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아이가 가족을 더 잘 돌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돌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아이’를 미담으로 소비하는 사회보다 “이제 네 꿈을 준비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6. 2026년 무엇이 달라졌나…‘가족돌봄 아동·청년’ 국가 지원 법제화
가장 큰 변화는 2026년 3월 26일부터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위기아동청년법’이 시행됐다는 점이다.
법은 가족에게 간호·간병이나 일상생활 관리 등의 도움을 제공하는 34세 이하를 ‘가족돌봄 아동·청년’으로 규정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할 제도적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자기돌봄비 제도가 주목된다. 시행령에 따르면 자기돌봄비 지원 대상은 원칙적으로 13세 이상 34세 이하 가족돌봄 아동·청년 가운데 소득·재산이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인 사람이다.
지원 대상으로 결정되면 자기계발, 건강관리, 신체·정신적 회복 등 미래 준비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용권 방식으로 지급한다.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 과정에서 운영해 온 가족돌봄청년 자기돌봄비는 연 200만원 규모였으며, 자기발전계획 수립과 일상돌봄서비스, 심리지원 등을 함께 연계해왔다.
또한 ‘일상돌봄 서비스’를 통해 가족돌봄청년 등이 재가 돌봄·가사, 식사·영양관리, 심리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이번 법 시행의 의미는 ‘가족을 돌보는 것은 집안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와 지역사회가 개입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법이 생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성년 가족돌봄 청소년은 자신이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직접 신청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학교에서 발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확인하고, 복지기관과 의료기관이 연결하는 적극적인 발굴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작동하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