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단식·오체투지 너머에 있었던 소망…“우리 아이도 함께 살아가게 해달라”
법을 만드는 일을 넘어, 당사자의 평범한 일상을 보장하는 사회를 묻다
[시민의소리=취재팀] 2017년 9월,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을 논의하는 주민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호소였다.
그 모습은 사진으로 전해져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고, 학교 설립을 둘러싼 과정은 김정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에도 담겼다.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교육의 기회 앞에서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기획한 『투쟁 속으로』는 그 질문을 더 긴 역사 속으로 가져간다. 부제는 ‘세상을 바꾸는 발달장애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2003년 교육권 투쟁에서 시작해 장애아동과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법 제정, 돌봄과 자립 지원,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요구로 이어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부모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만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거리로 나섰으며, 그 행동이 우리 사회의 책임을 어떻게 넓혀왔는가이다.
공개된 목차와 본문 발췌를 따라가면, 가족 안에 갇혀 있던 어려움이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권리의 문제로 바뀌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던 부모, 사회를 바꾸는 주체가 되다
1부 ‘운동을 시작하다’는 장애전담 어린이집과 무상보육, 특수학교 설립, 특수교육 보조 인력 배치 등 자녀의 생활에 맞닿은 요구에서 출발한다.
윤종술 대표와 도경만 위원장의 만남,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의 출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조직 과정이 이어진다.
처음부터 거대한 사회운동을 계획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자녀에게 필요한 자리를 마련하려다 행동에 나서게 된 부모들의 역사이다.
아이가 배울 곳을 찾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가족을 만난다.
혼자서는 풀기 어려웠던 문제가 공동의 요구가 되고, 그 요구가 조직과 운동으로 발전한다.
공개된 본문 51쪽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한다. 지원을 기다리던 부모들이 직접 협상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주체로 자신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책의 중요한 의미를 드러낸다.
장애인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도움을 받는 사람인 동시에, 제도의 빈틈을 발견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이다.
부모운동의 역사는 그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식의 목적은 동등한 교육기회였다
특수교육법 제정을 다룬 장에는 단식과 농성, 연행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담겨 있다.
공개된 본문 95쪽에서 부모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식은 단지 방법이었고, 우리가 원한 것은 동등한 교육기회였습니다.”
이 문장은 투쟁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로 세운다. 단식의 날짜나 농성의 규모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그 행동을 불러온 교육의 공백이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필요한 지원을 받게 하려는 요구가 왜 부모의 건강과 일상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됐는가.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설명하는 법률과 정책 뒤에는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교육당국을 찾아가고, 거리에서 요구를 반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오늘의 제도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그렇다고 부모의 희생 자체를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희생을 기억하는 이유는 다음 가족도 같은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을 소진하지 않아도 제도가 응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집 안에 갇히지 않도록
2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활동을 다룬다. 교육에서 복지로, 학령기에서 성인기로 운동의 관심이 확장되는 흐름이다.
공개된 본문 188쪽은 발달장애인법을 요구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학교를 마친 자녀들이 갈 곳을 잃고 가정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낮시간 활동과 일자리,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지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모운동의 질문은 한층 넓어진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의 지원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졸업 이후에는 어디에서 하루를 보내고,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책은 장애인 복지를 개별 서비스의 목록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게 한다.
교육과 돌봄, 노동과 주거는 한 사람의 일상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 어느 한 시기의 지원이 끝났다는 이유로 삶 전체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대목의 핵심이다.
부모들이 요구한 것은 자녀를 대신해 모든 일을 해주는 체계가 아니라, 자녀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9명에서 557명으로, 반복된 삭발이 묻는 국가의 책임
3부 ‘기나긴 여정,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는 주간활동서비스, 생애주기별 지원, 코로나19 시기의 위기, 24시간 지원체계 요구가 담겨 있다.
목차에 등장하는 209명과 557명의 삭발은 부모들이 집단으로 절박함을 드러냈던 순간을 보여준다.
법이 만들어졌는데도 왜 부모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을까. 이 구성은 법률의 존재와 생활 속 지원 사이에 남아 있는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법에 권리가 적혀 있어도 필요한 시간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가족의 하루는 여전히 불안할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지원을 가족의 책임에만 맡기면 부모의 건강과 나이, 경제적 형편에 따라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부모가 아프거나 돌봄을 이어가기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에서 국가책임제는 가족의 어려움을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로 읽힌다. 발달장애인의 삶을 부모의 헌신만으로 유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한 지원이 지속되는 구조를 마련하라는 요청이다.
오체투지의 끝에서 만나야 할 것은 평범한 하루이다
화요집회와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다룬 목차는 부모운동이 자신의 요구를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몸을 낮추고 땅에 엎드리는 행동은 말만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절박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장면을 비장한 투쟁의 이미지로만 소비하면 그 목적을 놓치게 된다.
거리의 행렬 끝에 있어야 할 것은 발달장애인이 배우고, 일하고, 쉬며, 이웃과 관계를 맺는 하루이다.
부모 역시 자녀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책의 제목은 독자를 ‘투쟁 속으로’ 부른다. 그 안에서 독자가 살펴야 할 것은 특별한 영웅의 삶보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특별한 행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책은 장애인 가족의 기록을 넘어선다. 누구의 일상이 제도 밖에 남아 있는지, 사회는 그 공백을 누구의 희생으로 메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부모운동의 역사와 함께 당사자의 목소리를 읽어야 한다
이 책의 가치는 부모운동의 경험을 교육·복지·돌봄·자립이라는 흐름 속에서 연결한다는 데 있다.
개별 사건으로 접했던 농성과 삭발, 법 제정 요구가 한 사람의 생애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읽는 관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기획한 만큼, 이 책은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기록이다.
이를 우리 사회 전체의 경험으로 넓혀 읽으려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사와 선택,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한다.
목차에 피플퍼스트운동이 포함돼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모가 자녀의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과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직접 말하는 과정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생각할 단서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헌신을 존중하는 일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지원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당사자가 원하는 생활을 실제로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가에 있어야 한다.
다음 세대의 부모가 같은 절박함을 반복하지 않도록
『투쟁 속으로』는 장애인 지원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의미 있는 기록이다.
부모와 활동가에게는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볼 자료이며, 교사와 복지 종사자, 정책 담당자에게는 제도의 출발점에 있었던 생활의 요구를 살펴볼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부모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공감은 오늘의 교육과 돌봄,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점검하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는 발표와 가족의 생활이 달라졌다는 경험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일이 필요하다.
부모들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는 가장 깊은 방식은 다음 세대의 가족이 같은 절박함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고, 졸업 이후의 삶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다시 단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이 책의 기록이 독자에게 남기는 과제는 바로 그 평범한 미래이다.
『투쟁 속으로-세상을 바꾸는 발달장애 부모들의 이야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기획|민들레|2026년 5월 28일 발행|3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