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가 지켜주지 못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몸으로 막아선다
성조기·음모론 스스로 차단… '재선거·참정권·애국가'만 외치는 자정(自淨) 집회
.
[시민의소리=김상철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8일로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지도부도, 음향 장비도 없다. 오직 육성(肉聲)으로 외치는 청년들의 함성만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8일 저녁 현장을 직접 취재한 결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의 중앙 입구 외 경기장 모든 출입구에도 시위 참가자들이 배치돼 투표함 반출을 막고 있었다.
특히 2-3게이트와 2-4게이트에는 청년들이 각 게이트를 직접 차단하며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핸드볼경기장뿐 아니라 체조경기장 앞에도 시위 인파가 집결해 있었으며, 저녁 9시 이후 더 많은 인원이 속속 모여들었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한때 4만여 명이 운집했고, 대다수가 2030세대 청년들이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전날인 7일 오전 9시께 8,500여 명이었던 시위대는 오후 5시 들어 3만 2,000여 명으로 4배가량 급증하기도 했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재선거, 참정권 침해, 애국가만 외쳐달라'는 지침을 스스로 공유하며 정치적 색채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극우 세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성조기를 자제해달라는 '성조기 자제령'도 자체적으로 내려졌고, "다른 나라 국기를 흔드는 것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며 태극기만 흔들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12·3 비상계엄보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더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져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참가자의 말은 이 자리에 모인 청년들의 심경을 압축한다.
출근과 등교까지 미룬 채 밤을 새운 대학생들도 있었다.
대학생 김모(25) 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했어야 했다"며 "기본적인 참정권이 침해받은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개표소 8개 출입구에 각각 배치돼 투표함 반출 여부를 감시하고 있으며, 경기장 안에는 개표를 마친 투표함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질서정연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경찰 교대 과정에서 박수를 보냈고,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정리하거나 태극기를 버리지 말고 다음 참가자를 위해 반납해 달라고 안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본 기성세대의 마음은 착잡하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며 지도부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2030 청년들이 음향 장비조차 없이 목이 쉬도록 외치는 모습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우려도 크다.
혹시라도 유혈 충돌 등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기성세대의 가슴을 짓누른다.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한 채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기성세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이 같은 2030세대의 분노에는 기성세대와 현 체제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참정권을 지키겠다는 청년들의 외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이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대한민국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