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소리=김상철 기자] “40만을 꿈꾸는 행복한 구리.” 이 문장은 도시의 미래를 향한 구호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표이기도 하다.
구리시 인창동에서 5대를 이어 살아왔다는 강호현은 자신을 “구리를 떠나지 않은 사람”이라 소개한다.
고향에 대한 애착은 곧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관심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군에서 배운 ‘리더십’, 지역에서 다시 쓰다
그의 첫 번째 전환점은 젊은 시절 군 복무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는 훈련소 전·후반기 학생장을 맡았고,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군대에서 배운 질서와 책임감, 그리고 사람을 이끄는 경험은 이후 지역 활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태도—“현장으로 가고, 끝을 보고, 결과를 남기는 방식”—의 기반이 됐다.
축산업에서 건설업으로…성장의 시간과 멈춤의 순간
전역 후 그는 가족의 축산업을 돕다가 1988년부터 소규모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법인을 세워 운영하며 사업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사업은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
그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 멈춤의 순간은 ‘좌절’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이 커졌고,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됐다.
1998년 ‘마음공부’…시선이 바뀌자, 길이 바뀌었다
그는 1998년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상의 시선이 ‘나’에서 ‘우리’로 옮겨가자, 관심의 대상은 자연스레 지역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는 단순한 불평이나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내부순환도로 민원 해결…‘동네 문제’가 ‘도시 문제’로 확장될 때
그가 처음으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든 것은 민원 현장이었다.
동창부락청년회장 활동 과정에서 수도권 내부순환도로 동창부락 구간의 민원을 해결했다고 한다.
주민의 생활과 맞닿은 문제를 직접 다루며 그는 행정, 주민,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를 몸으로 익혔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활동이 단순한 봉사 차원을 넘어 ‘정책과 행정’으로 연결되는 발판이 됐다.
주민자치위원에서 자치위원장까지…“동구동은 하나다”
2001년 그는 동구동 주민자치위원으로 참여했고, 동·시 행정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주민자치위원장을 2회 맡으며 “동구동은 하나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지역의 결속을 강조했다.
지역사회에서 자치 경험을 쌓아가면서 그는 “시민의 말이 행정으로 전달되고, 행정이 다시 시민의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전한다.
문화 현장에서 체감한 도시의 힘
그는 지역의 미래를 ‘개발’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구리문화원 이사로 활동하며 고구려·동구릉 유적과 관련한 연구와 답사에 참여했다고 밝힌다.
문화 현장은 그에게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보여준 무대였다.
그가 이후 관광특구, 랜드마크, K-컬처 등의 구상을 이야기하게 되는 배경에는 “도시는 이야기와 콘텐츠가 있어야 산다”는 체감이 깔려 있다.
“시민을 만나 듣고, 해법을 찾는다”…현장 중심 활동의 방식
2015년에는 구리발전전략연구소를 설립해 구리 곳곳을 돌며 시민을 만나고 민원을 듣고 해결책을 찾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지역 활동은 ‘행사성 봉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이었다. 듣고, 기록하고, 분석하고, 연결하고, 실행하는 방식. 그가 인물로서 주목받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말보다 현장”이라는 태도—에 있다.
2회에서는 그가 제시하는 “40만 도시 구리” 청사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행정구역 재편, 관광특구, 산업·일자리, 복지 인프라까지—그가 말하는 ‘미래 먹거리’는 무엇이며, 그 구상은 어떤 논리로 연결되는지 짚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