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맞으며 떠나야 하네 [이점석 칼럼]
상태바
겨울비 맞으며 떠나야 하네 [이점석 칼럼]
  • 이점석(저널리스트)
  • 승인 2019.10.04 05:35
  • 조회수 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지옥이 다가온다

겨울비 맞으며 떠나야 하네

[시민의소리=편집국장] 문화비평가 노드롭 플라이는 모든 서사구조의 원형이 신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영웅이 주인공인 신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설명된다. 봄에 태어나 성장하고 여름에 왕성한 기운으로 세력을 뻗친다. 가을에는 결실을 거두고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65세가 되면 이제 겨울나라로 들어간다. 우리 모두 시차를 두고 이 황혼열차를 타야 하는 것이다.

노년기가 되면 상실감이 온몸을 파고든다. 건강, 경제적 기반, 사회적 유대감, 삶의 목적 등이 노인을 우울하게 만든다. 늙음 자체가 노년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질병과 상실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늙음은 상실의 심화과정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역할이 상실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요양원에 부모를 맡긴 자식들이 연락을 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장례식 때도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장례비조로 보증금을 미리 받는 요양원도 있다. 그 부모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 요양원이 마치 고려장의 21세기 풍속처럼 비쳐진다.

일본에서는 1950년대엔 노인 부양을 버티지 못한 가족들이 노인을 산속에 버리는 기로() 풍속이 있었다. 1999년에 국내 개봉됐던 영화 나라야마부시코가 이런 내용을 다뤘다. 나라야먀는 줄참나무 산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1956년에 신인상을 받은 후까사와 시찌로의 단편이 원작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감동보다 전율과 절망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

어느 산골 오지마을에 70세가 되면 나라야마 정상으로 가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산 정상에서 죽으면 천국간다는 전설이 만들어진다. 69세 할머니 오닌이 주인공이다. 잉여 생산물이 없는 궁핍한 마을에서 노인은 식량을 축내는 존재에 불과하다. 첫눈이 내리는 날, 오닌의 아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싣고 산으로 향한다. 노모는 기꺼이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

아들은 그 아버지가 할머니를 버리지 않으려고 마을을 떠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들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이 축축히 젖어 있다. 산 정상에는 해골이 나뒹굴고 있다. 아들은 어머니를 내려 앉히고 산을 내려간다.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 아들의 등 뒤로 어머니가 어서 내려가라는 손짓을 한다.

영화 '나라아먀부시고' 의 한 장면
영화 '나라아먀부시고' 의 한 장면

 

노인 자살율 1위의 나라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몇 년 후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어서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는 점점 가속화된다. 이 통계수치에 따라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평균치에 입각한 복지정책은 뒷북치는 행정이 되곤 한다.

전라남도는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지난 2012 19.2%에서 201319.6%로 늘어났고 2017년에는 20%를 넘었다. 이것은 평균치일 뿐이다. 시군별로 보면 고흥군이 38.8%로 가장 높은 상태다. 이어 보성군(35.8%), 함평군(34.1%), 신안군(33.7%), 곡성군(33.7%), 강진군(32.6%), 진도군(32.4%), 구례군(31.7%), 완도군(30.6%), 해남군(30.3%) 등 전남지역 대부분의 시군 노인인구 비율이 30%를 넘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 노인자살률 1위를 차지한다. 특히 독거노인은 취약한 집단이다. 노인복지가 앞섰다고 하는 일본에서도 하류노인, 과로노인 이라는 말이 신조어가 됐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아사히 신문에서 노인지옥사회로 진입했다며 특집을 내기도 했다.

한국은 일찍부터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들만큼 고령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한국 노인에게는 자녀를 포함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지원자일 수밖에 없다. 배우자 등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은 가족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혼자 사는 노인은 그럴 수 없다.

강원도 횡성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6.6%로 전국 평균(14.9%)의 두배 수준이다. 그래서 노인 자살률이 높다. 인구 46000명 남짓인 횡성군은 한때 자살률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201410만명당 자살률이 51.3(전국 27.3)에 달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겨울비 맞으며 어디론가 떠냐야 하는 나그네 신세인 것이다. 노인 앞에는 이제 각자도생의 책무를 지고 살아야 하는 고달픔이 기다리고 있다.

이점석(저널리스트)
이점석(저널리스트)

 

이점석(저널리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