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운드 유영춘의 한국 그룹사운드 백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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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운드 유영춘의 한국 그룹사운드 백서(2)
  • 신형
  • 승인 2022.09.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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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실버코인승 활동과 탈퇴 그리고 He-5 결성까지

영사운드 유영춘의 한국 그룹사운드 백서(2)

-(2탄) 실버코인승 활동과 탈퇴 그리고 He-5 결성까지

구리남양주시민의소리는 창간 3주년을 맞아 1972년 불후의 명곡 등불을 발표한 영사운드의 보컬 유영춘의 한국 그룹사운드 백서를 연재한다. 1962년 영국의 비틀스가 몰고 온 한국의 그룹사운드의 열풍, 고등학교 2학년 무작정 음악을 시작한 유영춘의 생생한 증언으로 그때 그 시절 그룹사운드의 탄생과 주변 가수들의 일화를 재구성해 연재한다. 2탄으로 안치행과 결성하고 미8군에서 활동한 실버코인스탈퇴와 “He-5(히파이브)” 결성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글쓴이 주)

영사운드 시절의 유영춘
영사운드 시절의 유영춘(유영춘 제공)

-안치행 유영춘을 발탁하다

유영춘을 발탁한 안치행은 1942년 전라남도 진도 가사도에서 태어났고, 작곡가이자 편곡자로 1975년 가요계 최초 설립한 안타 프로덕션은 70~80년대의 대표적 음반 기획사로 안타 음반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치행은 196771년까지 활동한 실버코인스(Silver Coins)는 미8군 무대 패키지 쇼에서 197275년에는 전설의 록밴드 영사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유영춘과는 빛과 그림자 사이였다.

1967년에 결성한 이 그룹은 주로 미8군 무대에서 공연했으며, 멤버는 보컬 유영춘을 비롯해 키보드 장현종, 리드기타 안치행, 베이스기타 오덕기, 드럼 김용호로 구성된 5인조 그룹이었다. 1974년 베이스가 김희조로 바뀌었고, 플루트 연주자 왕준기도 가세해 6인조로 확대됐다.

안치행은 영사운드의 달무리, 등불은 물론, 나훈아의 영동부르스’, 펄시스터스의 누구나도 그러하듯이’, 최헌의 오동잎, 구름 나그네’,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주현미의 울면서 후회하네’, 박남정의 ! 바람이여는 물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편곡하는 등 통산 600곡에 달하는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또한, 불교 신자로 2004년 불교 대중화를 위해 이색적인 힙합 리듬 반야심경음반을 발표하기도 했고, 2010년에는 천안함 전사 장병 추모곡 발표로 관심을 모았다. 2016KBS 2TV ‘불후의 명곡-안치행 편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안치행은 대중가요에 대한 공으로 2012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올해 초에는 대장동 사건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장동 망자(亡者) 추모곡' 대장동 블루스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망자는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본부장,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과 지난 111일 모텔에서 숨진 공익제보자 이병철 씨를 가리킨다.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안치행 (유투브 RUBYTUBE 캡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안치행 (유투브 RUBYTUBE 캡처)

-김계자와 미8군 공연 후 돌아오는 길에 전복사고를 당하다

유영춘이 합류한 실버코인스는 한 달 보름간 합숙 훈련을 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당시 미8군 무대에는 1탄에서 소개한 오픈밴드와 하우스밴드 외에 플라워 쇼단이 있었다.

플라워 쇼단에는 가수와 그룹사운드, 코미디와 무용, 마술까지 망라한 종합 예술단체였다. 이 쇼단은 전국의 200개가 넘는 미군 기지를 한 달 내내 순회공연을 했다.

당시 최고의 여성 보컬은 재즈 가수 김계자(金桂子)였다. 그녀는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프리티 리틀 베이비(Pretty little baby)’ 번안곡 귀여운 베이비로 미8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현미와 한명숙과는 미8군 여가수 트로이카였다.” -유영춘 채록

김계자는 1940년생으로 어머니는 김연실로 일제 강점기 1927년 금강키네마사에서 제작한 무성영화 낙화유수, 세 동무의 주인공으로 주제곡 낙화유수를 불렀다. 해방 후 월북하고 인민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져 지금은 소식이 없다. 얼마 전 TV에서 현미와 한명숙이 그녀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김계자의 앨범 ‘귀여운 베비’
김계자의 앨범 ‘귀여운 베비’(유영춘 제공)

각설하고, 실버코인스는 김계자와 1967년 동두천 캠프 송년회 합동 공연을 했다. 약속된 공연시간을 마쳤으나 사령관이 공연비를 더 주며 오버타임(연장)을 요청했다. 김계자를 비롯한 플라워 쇼단은 관광버스로 먼저 출발을 했고, 그들은 신나게 연주를 하고,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는 쓰리쿼터에 올라타 서울로 출발을 했다.

이때 큰 탈이 났다. 미군 운전병이 음주 상태인 것을 늦게 알았다. 이미 차는 떠났고 덜컹거리며 찬 바람이 바람막이 사이로 들어오고 몸을 움츠리고 졸고 있을 때 비명이 들렸다. 전복사고가 난 것이다.”-유영춘 채록

꾸불꾸불한 길을 늦은 시간 속력을 내 달리다가 차단기를 들이받아 쓰리쿼터가 전복을 한 것이다. 당시 차에는 안치행 등 7인이 타고 있었다. 다행히 안치행과 유영춘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악기는 도로에 나 뒹굴고 멤버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뚝방과 논바닥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베이스 오덕기는 논바닥에, 드럼 김용호는 뚝방에 처박혔다. 베이스 오덕기는 손을, 드럼 김용호는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군은 보상비로 450만원과 별도로 악기보상까지 해줬다.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덕분에 악기를 국산에서 외산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6개월이라는 장기 유급휴가를 해야 했기에 팀은 해체의 위기에 처했다.

HE-5
HE-5 (유영춘 제공)

-유영춘 He-5를 결성하다

사고 6개월 뒤 실버코인스는 화양프로덕션을 찾아가 오디션을 다시 봤다. 그때 부른 노래가 포크록의 시초였던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캘리포니아 드림(California Dreamin')’몬데이, 몬데이(Monday, Monday)’였으며 코러스를 이시스터스가 도움을 줬다.

화양프로덕션(화양흥업)은 미8군 스타플레이어를 대량으로 배출한 기획사로 설립자는 트럼펫 연주자이자 쇼단장인 베니 김(김영순)이란 인물이다. 8군 무대의 대부로 군림했다. 베니 김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부른 이해연이 부인이었지만, 패티 김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유영춘 채록

화양에서 유영춘은 이시스터스와 호흡을 맞춘다. 이시스터스는 울릉도 트위스트, 서울의 아가씨, 좋아졌네등의 부른 여성 트리오로 김명자(희선김천숙·이정자로 김씨가 둘, 이씨가 하나인데 김씨는 친자매이다.

이들이 데뷔하기 전에 김해송과 이난영 부부의 딸과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의 딸들로 구성된 인기 절정인 김시스터스가 있었기에 이시스터스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들은 60~70년대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유영춘은 이곳에서 이시스터스의 동생인 김용호와 가수 장세정의 아들 한웅,  신중현 팀의 조용남, 이인성과 그 악단의 한광수와 의기투합을 해 He-5(히 파이브)를 결성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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