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누군가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나 삶의 태도이다 [정경진의 정문일침9(頂門一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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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누군가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나 삶의 태도이다 [정경진의 정문일침9(頂門一鍼)]
  • 정경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2 10:10
  • 조회수 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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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건강과 행복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음을 자각했으면
정경진 한의원장
정경진 한의원장

[시민의소리=정경진의 정문일침] 시베리아의 호랑이의 하루 활동 반경이 약 350km 라는 실험보고가 있었다. 

각보다 매우 큰 범위에서 놀라워했지만 언어를 사용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새 발의 피다. 

인간은 정해진 서식지를 순응하여 사는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동반경이 넓다. 

인간은 어느 정도 자연계의 예외적 존재로서 자연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유롭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가 싶다. 

간은 존재와 의식 그리고 마음과 육체라는 이중적 구조를 인식하고 사는 특이한 존재이다 보니 자유스런 활동과 함께 육체의 죽음을 의식하는 특이한 구조로  말미암아 존재론적 불안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문화를 만들었으며, 신앙도 또한 인간 존재의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게 된다. 

이상은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라는 책을 읽고 난 느낌중의 하나이다.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복잡하고 고리타분한 종교 관련 책에서 말이다. 

그 바닥에서 꽤 유명한 철학자이신 길 회성 교수님의 글인데, 신경정신과 원장님이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기도 했다.

나이에 책이 들어오기도 만무하지만 성의와 정성에 꼭 읽어보겠다고 약속한 나의 실언(?)이 책을 읽게 한 계기였다. 

어찌됐던 책 중의 종교서적은 그리 썩 내키지 않는 입장이라 건성건성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 평소 종교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더구나 분야는 다르지만 바라보는 지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음을 느낀 이후로 나의 책읽기는 건성이 아닌 필독의 이유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조용한 서재에서 혼자 책 읽는 희열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노안으로 말미암아 안경을 벗고 책을 가깝게 대하는 나의 모습이 어지간히 웃기기도 하였다. 

자는 종교가 특히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철학과 함께 하여 인구의 반인 세계의 종교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교와 이성의 화해와 통합을 주문하였으며,  중세시대에 들어와서부터 형이상학적 철학을 버리고 초자연적인 신관을 고집하면서부터 과학의 대항에 무너지고 세상 사람들이 종교적 세계관과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초자연적 신관이 자연적 무신론을 잉태하고  형이상학적 철학관이나 동양의 궁극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는 이성을 과학의 탄생과 함께 세속적인 이성,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되고 말았다고 한다. 

과학 만능시대, 물질만능시대, 세속적 이성의 시대에 사는 인간들의 참된 가치는 증명이고, 돈이고, 대상화된 사람뿐이다. 

간 존재의 불안에서 시작된 종교의 탄생이 극단적 초자연주의로 인간을 억압하고 전체주의로 세계를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고, 과학과 이성의 도움으로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간 본래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진 못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초자연주의적인 신관을 극복하고 동양에서 말하는 일원론적 형이상학을 재발견하며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영성을 회복하고 근대의 소중한 유산인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책임성을 살려나가는 방향이어야한다고 하였다. 

공허하고 세속적인 휴머니즘이 아닌 인간의 영적 본성에 알맞은 영적휴머니즘으로 나아가아 한다고 하였다.  

신의 탄생이나 기독교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 참고할 사항으로 넘겨준다. 왜냐하면 이야기하다보면 갑론을박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본래 하고 싶은 말들은 어디로 살아져 버리고 만다. 

과학과 종교의 시대, 인간과 신들 그리고 종교와 철학(이성)이 화해하고 통합할 이유와 방향에 대해 시종이관 이야기하고 있다. 

자도 갈등과 대립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결코 대립과 투쟁의 분야는 아닐 듯하다. 

신앙의 반대는 무엇일까 ? 불신이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불안과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기 위하여 어떤 궁극적 헌신의 대상과 삶의 정향된 틀을 찾아가며 필요로 한다. 

이게 종교의 기능이 아닐까 생각하며 궁극적 관심은 어떤 부차적 관심들에 우선하는 관심이며 우리가 최고선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절대적 관심이다. 

불신이란 어떤 교리나 성서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지 않는 지적 의심이 아니라 절대자를 외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마음의 자세이며 삶의 태도다.  

전통적 신관에 따른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의 논쟁보다도 절대자뿐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마음의 자세 및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성이 없는 영성은 자신을 우상화하고 과대망상증에 빠지게 하지만 영성 없는 이성은 이기적 욕망의 자극과 수단화하는 삶의 태도를 잉태하여 공허한 구호와 정치선전의 수단일 뿐임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귀하고 존엄하다.

 내 이웃을 나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내 이웃 또한 나처럼 대하라는 성경의 구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건강과 행복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음을 자각했으면 좋겠다. 

 

정경진 한의학 박사 약력

전주 신흥고등학교 졸업
익산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한의학 박사)
전 경기도 한의사회장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총동문회장
칼럼 : 정경진의 정문일침(頂門一鍼)

 

저서 

복부비만 한의사의 아침운동 100일

한의사 세상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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