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려(范蠡) 와 문종(文種) [발행인 김상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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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范蠡) 와 문종(文種) [발행인 김상철 칼럼]
  • 발행인 김상철
  • 승인 2019.11.0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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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지도자(指導者)는 넓은 도량(度量)과 냉철한 판단력(判斷力)과 인내심(忍耐心) 자기헌신(自己獻身)이 필요 할 것이다.
발행인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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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발행인 김상철 칼럼] 춘추전국시대, 월(越)왕(王) 구천(句踐)의 신하 범려(范蠡) 와 문종(文種)이 있었다.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에 패한 후...

종(文種)은 월(越)나라에 남아 국내정치를 맡아 월(越)나라 재건에 힘쓰고,  범려(范蠡)는 월왕(越王) 구천을 따라 오(吳)왕(王)부차(夫差)의 노예가 되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구천을 돌보며 충성한 자이다.

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월(越)나라의 재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한 일등공신 들이다. 

이때 범려(范蠡)는 문종(文種)에게 내가볼 때  구천(句踐)은 “고통은 함께하여도‘ 영화는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니 나와 함께 월(越)나라를 떠나자고 제안 하였으나 문종(文種)은 범려(范蠡)의 제의를 따르지 않고 월(越)나라에 남아있다 모함을 당하여 자결로 생을 마친다.

그러나 범려(范蠡)는 중국4대미인 중의 하나라 하는 서시(西施)와 함께 월(越)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의 재상이 되고 유명한 도예가가 되었으며, 커다란 재산가가 되어 자신의 재물을 쾌척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것이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의 간략한 소개이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지킨 월(越)나라와 구천(句踐)에 대한 애국과 충성심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둘의 생각과 판단은 달랐다.     

일까?

문종(文種)의 월(越)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구천(句踐)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과 무한의  신뢰(信賴)때문이었을까?

범려(范蠡)는 구천(句踐)의 자기 한계를 모르는 교만(驕慢)함을 간파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한 처세술의 달인인가?

만약 구천이 고통을 함께한 신하들에게 무한자비(無限慈悲)로 보답을 하였다면 구천에 대한 범려(范蠡)의 증오와 배신은  없었을 것이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름지기 지도자(指導者)는 넓은 도량(度量)과 냉철한 판단력(判斷力)과 인내심(忍耐心) 자기헌신(自己獻身)이 필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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