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을 거니는 문화해설사 '정남선' [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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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정원'을 거니는 문화해설사 '정남선' [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 송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4 09:21
  • 조회수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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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스스로 촛불처럼 타고 있다”며 신들의 정원처럼 미소를 머금는다.
송재욱 칼럼니스트
송재욱 칼럼니스트

[시민의소리=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동구릉'. 조선 왕조 500여 년을 거치며 만들어진 남한에 있는 40여 기의 왕릉 전체가 지난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그 중 9개의 왕릉이 모여 있는 곳이다. 

늘이 내린 명당’이라는 자연 그대로의 품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9개의 왕릉에는 억새풀이 심어져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 효명세자와 왕비의 무덤이 있는 수릉 등이 있고 독특한 장묘문화와 500년 동안의 조선 예술 변천사만큼이나 사연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묻혀 있다. 

돌아가신 임금의 궁전인 왕릉은 자연의 품속에 안겨 있어 ‘신들의 정원’이라고 불려진다. 

동구릉은 해자림 안쪽의 화소지역이 소나무를 비롯한 많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600여년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약 58만평의 대규모 정원이다. 

이곳에는 신들과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발굴하고 역사를 들려주는 문화 해설사 정남선이 있다.

남선 해설사는 경남 창원에서 23년을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다. 

명예퇴직을 하고 2004년에 구리로 이사 와서 뭔가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찾던 중에 아차산과 동구릉의 역사와 문화의 남다른 매력에 빠졌다. 

2006년도엔 구리문화원에 개설된 ‘구리 문화와 향토문화지킴이 과정’ 수업을 들었고 다음 해인 2007년에 경기도의 문화해설사 시험에 합격했다. 

동구릉에서는 하루에 두 팀 정도의 관람객에게 조선왕조 9개 왕릉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역사를 이야기한다. 

정남선 해설사는 흥미 있고 긍정적인 이야기 위주의 해설과 역사 선생님의 깊이가 함께 묻어나는 해설로 정평이 나 있다. 

초등학생부터 연세 지긋한 동네 주민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연령,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해설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인상 깊었던 관람객도 많았다고 한다. 

대학 동창인 할아버지 몇 분이 퇴직 후 조선왕릉 전체를 둘러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서 첫 방문지를 동구릉으로 정하고 정남선 해설사를 찾았다. 

나름 조선의 역사와 왕릉에 대해 식견을 가졌던 그 분들은 해설에 토를 달면서 나름의 와전된 역사 이해로 강한 주장들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왕릉을 옮겨 갈수록 정남선의 세밀하고 따뜻한 해설에 녹아들며 차분히 해설을 듣고, 나중에는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던 기억도 있다고 한다. 

‘아는 것이 힘’일뿐만 아니라 ‘어떻게’전달해 주느냐에 따라 소통의 폭과 깊이가 달리 느껴질 것이다.   

정남선 해설사의 깊고 풍부한 해설 덕도 있겠지만 ‘신들의 정원’인 동구릉 그 자체의 매력도 크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구릉지대에 있어 푸근함과 따뜻함을 주는 풍광. 

인공적으로 산을 깎아 만들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품에 안긴 듯 조성된 문화적 운치. 

아이들이나 연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푸근하고 호젓한 숲길. 

아이들끼리 물장구치고 놀 수 있는 냇물. 왕릉에 올라서면 한 눈에 보이는 구리시의 전경은 덤이다.

녀는 동구릉 9개 왕릉 중 숭릉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한다. 

숭릉은 조선왕조 18대 왕인 현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왕후 김씨의 묘가 함께 자리한 쌍릉이다. 

동구릉의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그간 관리문제로 개방을 못해 최근에 개방된 능이다. 

보물로 지정된 정자각의 팔작지붕은 아름답기도 하고 왕릉 전체 정자각 중 유일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예술의 독특함과 더불어 현종의 기구한 인간사에도 끌린다고 한다. 

알다시피 현종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볼모살이를 했던 아버지 봉림대군(후에 효종)의 아들로 조선의 왕 중 유일하게 외국인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이 된 이후에도 그 유명한 남인과 서인간의 예송논쟁으로 왕이 되었으나 신하들과 대립했으며 기가 센 왕비로 인해 후궁을 두지 않았던 유일한 왕이었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쳤다.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다스렸던 어떤 백성보다 더 한 많고 기구한 그의 인간사에 주목한 것이다. 

정남선 해설사는 동구릉의 문화적 가치와 미래를 위해서도 더더욱 스토리에 주목한다. 

2016년 방송된 배우 박보검이 주연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인기를 끌자 동구릉을 찾은 학생과 연인들이 저마다 수릉이 어디냐고 물으며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스토리가 입혀진 우리 문화와 역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된다. 

정 해설사는 이야기가 풍성해 질수록 역사의 재발견뿐만 아니라 관광수입을 비롯한 새로운 가치와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수릉은 효명세자(후에 익종으로 추존됨)와 그 왕비의 능이다.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의 건강이 악화되자 18세의 나이로 왕의 역할을 대신(대리청정)했지만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정작 왕이 되진 못했다. 

효명세자는 문학과 예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 400여 편의 시를 직접 짓고 예술을 장려했다. 

시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등 세도정치에 시달렸던 효명은 권문세가의 위세를 누르고자 본인의 장기를 십분 활용하는 역발상 묘책을 냈다. 

어머니의 생일에 대규모 궁중연회를 열었고 연회에 추는 궁중무용의 악장 20여 편을 본인이 직접 짓기도 했다. 

유교의 근본인 예악을 중시하는 덕망 있는 군주의 존재를 널리 알려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포석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건강이 문제였고 왕이 되지 못한 채 일찍 생을 마쳤다. 

왕이 되지 못했기에 무덤이 왕릉이 되지 못하였으나 아들인 헌종이 즉위한 이후 왕으로 추존되었으며 왕비와 함께 수릉으로 옮겨지기 까지 묘 자리만 두 번을 옮겨 다니는 등 죽어서도 그의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동구릉

동구릉의 왕릉 하나하나에는 단순히 왕과 왕비만 묻혀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신하, 당시 왕들이 통치했던 백성들의 독특하고 애달픈 사연들도 함께 묻혀있다. 문화 해설사는 그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시대에 맞게 새로이 구성해 탐방객들에게 전달하는 문화 일선의 창작자들이기도 하다. 

제2 제3의 박보검이 나와 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각자의 삶에 소소한 행복으로 남는 것이 정남선 해설사의 꿈이자 소임이다. 

정남선 해설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고리다. 

선의 역사가 숨겨진 동구릉을 넘어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가 보존된 아차산과 대장간 마을, 그리고 근현대 위인들인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오세창, 지석영, 이중섭 등이 묻힌 망우묘역까지 그녀의 역사연구 범위는 매우 넓고 깊다.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늘도 관람객과 시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발굴하느라 바쁘다.

정남선 해설사는 동구릉의 사계 중에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낙엽이 깔리는 동구릉 숲은 구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퇴적된 이야기들이 많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구려, 조선, 근현대 역사까지 다양한 문화재와 이야기가 넘쳐 나는 곳인 구리시를 향한 그녀의 열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녀는 오늘도 오로지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문화해설이라는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스스로 촛불처럼 타고 있다”며 신들의 정원처럼 미소를 머금는다.

 

송재욱 칼럼니스트 프로필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 정치학과 석사

저서 : 자스민과 석유

송재욱 지음 '자스민과 석유'
송재욱 지음 '자스민과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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