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석에 외로운 사람들, 더 바쁜 사람들

누군가는 고향 대신 스터디카페로, 누군가는 집 대신 일터로 간다

2026-09-24     전국시민의소리

[시민의소리=사설] 26세 취업준비생 김명휘 씨에게 올해 추석은 귀성하는 날이 아니다.

최종면접에서 세 차례 탈락한 그는 추석 연휴에도 경기 의왕에서 서울로 오가며 취업 준비를 이어가기로 했다.

“오늘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청년에게 긴 연휴는 휴식보다 불안과 경쟁의 시간에 가깝다. 

같은 보도에 등장한 28세 문소연 씨도 다르지 않다. 최근 3개월 동안 50곳 넘게 입사지원서를 냈고, 어렵게 서류전형을 통과한 회사의 과제와 다른 기업의 채용시험을 준비하며 추석 연휴를 보낼 예정이다.

가족과 웃으며 송편을 먹어야 할 나이에 노트북과 문제집 앞에서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뿐 아니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486명을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는 정서적 고립감이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나타났고, 1인 가구 청년이 다인 가구 청년보다 자살·자해 생각 수준이 높은 경향도 확인됐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이미 관계가 단절된 청년에게 오히려 자신의 고립을 더 크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외로움에는 나이가 없다.

혼자 사는 노인,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 자녀와 연락이 끊어진 부모가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청년, 취업하지 못해 고향 가기가 부담스러운 취업준비생,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고립·은둔 청년도 있다.

이혼이나 사별 뒤 혼자 사는 중장년, 경제적인 이유로 귀성을 포기한 사람,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명절을 보내는 환자, 몸이 불편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 가족이 해외에 있는 사람, 가족은 있지만 갈등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전남 고흥군이 지난 9월 16일 추석을 앞두고 중장년 1인가구에 반찬꾸러미를 전달하면서 건강과 생활환경, 안부까지 함께 살핀 것도 명절 고립이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석의 다른 쪽에는 정반대의 사람들이 있다.

외로워서 긴 명절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너무 바빠 명절인지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이다.

2026년 9월 24일 오전 6시30분, 인천국제공항 탑승교 운영 노동자 조현승 씨는 일터로 향했다.

이날 근무는 오후 7시30분까지다. 명절과 주말에는 평소보다 업무량이 두 배가량 늘어 식사시간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한다.

수많은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과 고향 방문을 떠나는 순간, 그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 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경기도 여주의 한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김주혜 씨도 추석날 장애 아동들의 식사를 돕고 옷을 입히고 목욕과 생활을 돕는다.

아이들이 명절이라고 모두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곁을 지켜야 한다.

같은 시설의 이해선 씨는 추석 당일 오후 8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야간근무를 한다.

수원에서 일하는 배달기사 안보현 씨는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연휴 내내 일하기로 했다.

이유는 생계다. 우리가 가족과 둘러앉아 주문한 치킨 한 마리에도 그것을 배달하는 누군가의 명절 노동이 숨어 있다. 

택배 현장은 더욱 분주하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추석 택배 물량이 평시보다 4.9% 증가할 것으로 보고 간선차량 기사 1천600명, 택배기사 1천200명, 상하차·분류인력 2천700명 등 약 5천500명의 임시인력을 추가 투입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편안하게 보내는 추석은 수많은 사람의 노동 위에 서 있다.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 119구급대원과 소방관, 경찰관과 상황실 근무자, 군인과 경계근무 장병이 있다.

정부도 이번 연휴 응급의료기관 416곳의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소방 특별경계근무와 치안 활동을 강화한다. 

기차와 지하철 기관사, 버스·택시 기사, 역무원, 철도 종사자, 항공기 조종사와 승무원, 관제사와 공항 근무자도 있다.

택배기사와 우편집배원, 물류센터 분류·상하차 노동자, 화물차 기사와 배달기사도 달린다.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생활지원사,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각종 복지시설 종사자는 돌봄을 멈출 수 없다.

환경미화원과 폐기물 처리 종사자, 아파트 경비원과 시설관리 노동자도 자리를 지킨다.

전통시장 상인, 마트와 편의점 직원, 음식점 종사자, 주방과 배달 노동자, 주유소 직원도 일한다.

호텔과 숙박업소 직원, 관광지와 놀이시설 종사자, 영화관 직원도 다른 사람들의 연휴를 위해 더 바빠진다.

방송사 기자와 카메라기자, 신문·통신사 기자, 방송 제작진도 뉴스를 전한다.

전기·가스·수도·통신 장애에 대비하는 비상근무자와 도로관리 인력도 명절이라고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들 가운데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교대근무 때문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으며, 하루라도 더 벌어야 해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달라도 한 가지는 같다.

우리가 쉬는 동안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두 곳을 바라봤으면 한다.

한쪽에는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독거노인만이 아니다. 취업준비생도 있고, 고립된 청년도 있고, 혼자 사는 중장년도 있고, 병원과 시설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추석 잘 보내세요.”

“밥은 드셨어요?”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하시죠.”

평범한 이 몇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이번 추석에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응급실에서 만난 간호사에게, 택배를 가져온 기사에게,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원에게, 음식을 가져온 배달기사에게 짧게라도 말해보자.

“명절에도 고생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찬사가 아니다.

정당한 수당과 충분한 휴식, 안전한 근무환경이 우선돼야 하고, 그 위에 시민의 존중이 더해져야 한다.

실제 명절 노동 현장에서도 노동자들은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추석은 풍성한 사람끼리 더 풍성해지는 날이어서는 안 된다.

혼자인 사람에게는 사람이 찾아가고, 지친 사람에게는 휴식이 돌아가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전해지는 날이어야 한다.

올해 추석에는 가족의 숫자보다 주변의 빈자리를 한번 바라보자.

누군가는 외로워서 명절이 길고, 누군가는 바빠서 명절이 짧다.

그들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주고, 그들의 수고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송편보다 먼저 나누어야 할 우리 시대의 추석 인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