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들어진 전통’을 걷어내고 차례상의 본래 자리를 찾자

2026-09-23     신형

[칼럼] ‘만들어진 전통’을 걷어내고 차례상의 본래 자리를 찾자

 

명절 아침 차례상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곤 했다.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두라는 ‘홍동백서(紅東白西)’부터 대추·밤·배·감의 줄을 세우는 ‘조율이시(棗栗梨枾)’까지, 과일 하나 놓는 일도 살얼음판 같았다.

 

상다리가 휘도록 전을 부치고 탕을 끓여 올려야만 조상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그 무거운 격식이야말로 수백 년 유교 조선을 지탱해 온 불변의 법도이자 전통이라 여겨왔다.

 

5열로

 

 

그러나 이 엄격한 규칙들은 조선의 역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학의 기준인 『주자가례』는 물론 『국조오례의』나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을 보아도 과일을 두는 자리는 그저 ‘과(果)’ 한 글자뿐이다.

 

계절에 맞는 제철 과실 네다섯 가지를 형편껏 정갈하게 놓으면 족했다. 집집마다 환경에 맞게 예를 다하는 ‘가가례(家家禮)’야말로 조선이 품었던 진짜 예법의 유연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옭아맨 그 잣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신분제가 해체되고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던 20세기 중후반, 누구나 양반처럼 제사를 지내고 싶어 했던 도시민들의 불안과 열망이 시발점이었다.

 

상업용 예서와 문방구에서 팔던 제사용 병풍이 사자성어로 도식화한 차림표를 퍼뜨렸고, 여기에 “대추는 임금, 밤은 삼정승” 같은 그럴싸한 사후 해석이 덧붙여졌다. 수백 년의 법도라 믿었던 것은 근대 산업화 시기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미 반세기 전 1969년 제정된 가정의례준칙은 이 허례허식을 꿰뚫어 보았다. 복잡한 진설 규칙을 배제하고, 평상시 가족이 먹는 밥상에 계절 음식 몇 가지, 송편 한 그릇과 과일 서너 개면 족하다고 명시했다.

 

간소한

 

 

최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홍동백서와 조율이시는 근거가 없다”며 기름 냄새 자욱한 전을 걷어내고 9가지 안팎의 간소한 표준 차례상을 제안한 것 역시 파격이 아닌 본래의 예(禮)로 돌아가자는 회귀 선언이다.

 

차례(茶禮)란 본래 계절의 변화를 맞아 조상께 맑은 차와 가벼운 음식을 올리며 안부를 묻는 소박한 의식이었다. 그 본질은 그릇의 높이나 배열의 방위가 아니라 정성에 있다.

 

이번 명절에는 억지스러운 규칙 대신 가을 볕을 머금은 탐스러운 과일과 따뜻한 송편 한 그릇을 편안하게 올려보자. 만들어진 굴레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다리 너머 서로를 보듬는 가족들의 다정한 얼굴이 온전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