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술잔 내려놓는 한국인들…

‘부어라 마셔라’ 문화의 퇴장을 반긴다 지난해 주류 출고량 298만8000㎘, 27년 만에 300만㎘ 아래 술 소비 감소를 산업 위기로만 볼 게 아니라 건강한 사회 변화로 읽어야

2026-08-25     전국시민의소리
일러스트/ailulu

[시민의소리=사설]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술 권하는 문화’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주류 출고량은 약 298만8000㎘로 집계됐다. 300만㎘ 아래로 내려간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92만2000㎘ 이후 27년 만이다.

2015년 380만4000㎘와 비교하면 10년 사이 약 21.5% 줄었다.

대표 주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맥주 출고량은 약 151만9000㎘, 희석식 소주는 약 79만3000㎘, 탁주는 약 31만8000㎘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히 맥주와 소주는 최근 몇 년간 감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숫자를 곧바로 “한국인이 그만큼 술을 덜 마셨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출고량에는 생산과 수입, 재고, 유통구조 변화가 반영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감소세와 음주행태 변화를 함께 보면 우리 사회의 술 소비문화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질병관리청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도 변화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2025년 전국 성인의 고위험음주율은 12.0%로 집계됐다. 아직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2024년 12.6%보다는 낮아졌다.

우리는 이 변화를 반겨야 한다.

과거 직장생활에서 술은 선택이라기보다 조직생활의 일부에 가까웠다.

회식에서 잔을 거절하면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취급받았고, 술을 잘 마시는 능력이 인간관계와 영업 능력처럼 평가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세대가 바뀌었다. 저녁 시간을 가족과 보내거나 운동과 취미에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술자리에서도 얼마나 많이 마셨느냐보다 무엇을 마셨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무알코올·저알코올 제품과 다양한 전통주·과실주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1인 가구 증가도 주류시장 축소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감소를 건강 중시 문화 하나로 설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주류업계에는 분명 쉽지 않은 변화다. 맥주와 소주를 대량으로 생산해 많이 파는 방식만으로는 시장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소비 감소를 되돌리기 위해 과음 문화를 되살리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산업도 ‘많이 마시는 시장’에서 ‘적게 마시되 제대로 고르는 시장’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저도주와 무알코올 제품, 지역 특색을 살린 전통주, 품질 중심의 소량 소비 시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지속가능하다.

정부의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주류 출고량 감소로 세수와 산업 규모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음주로 인한 질병과 사고, 가정과 직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측면도 함께 봐야 한다.

술이 사라질 필요는 없다. 좋은 사람들과 음식 한 상을 놓고 가볍게 나누는 술 한잔은 우리 삶의 문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술을 강요하는 문화였다.

누군가 “오늘은 마시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않는 사회, 술잔을 비우는 것보다 다음 날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다.

주류 출고량 300만㎘ 붕괴를 산업의 위기라는 숫자로만 볼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손에 들고 있던 과음의 술잔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