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잇길로 걸어가는 모습 보고 사랑한다
이충재
절명의 순간을 염두해 두며
숨죽이듯
물었다
이후
바람불거나 비 내릴 때
혹은 눈 내리거나 햇살 강하게 내리쬘 때
그 한 사람 뒤퉁수 후려치고 배불릴 때도
꽃 잎 피고질 때
그 사잇길로 걸어가는 모습 보고 사랑한다
고백 남길 그날을 위해
딸에게 속삭였다
딸아
아빠가 어떻게 늙어 갈지
잘 보렴
성긴 가지마냥 빼빼하거나
가을 풀섶마냥 머리카락 다 빠지고 히어진다해도
대낮에도 사물을 향한 눈동자 희미하거나
몸이 흔들려 중심을 잃는다해도
꽃을 사랑하고 쓰러져가는 나무들과 들풀을 보고
여전히 눈물 흘릴 줄 아는
살아있는 감정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될게다
아직 순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심장이 있음을
그날
다시 얼굴 마주할 때
오늘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넬 수 있겠니
[출처] 그 이후|작성자 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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