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정상頂上에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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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정상頂上에 오르는 길'
  • 구리남양주 시민의소리
  • 승인 2019.09.15 20:40
  • 조회수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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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의 유혹과 따뜻한 잠을 뿌려치고 오직 한 치라도 높은 바위가 있으면 뛰어올라라.

당신들이 이 높은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을의 풀벌레처럼 밤에도 쉬지 않고 울어야만 한다.

편히 잠든 사람들의 코코는 소리나 잔칫날에 부르는 그런 노래여서는 안 된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먼저 제 몸을 풀섶에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별이 사라진 하늘에서도 그 빛의 흔적을 볼 줄 알고 단풍 든 이파리에서도 연둣빛 바람 소리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의 더듬이가 있어야만 한다.

당신들이 이 높은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바람을 가득 채운 고무공처럼 탄력이 있어야만 한다.

부서지거나 금세 짜부러드는 궤짝이어서는 안 된다.

튀어올라야만 한다.

벽에 내던진 것만큼 튀어나오는 반 작용, 억누를지라도 다시 제 살결로 부풀어오를 줄 아는

자생의 힘을 지녀야 한다.

당신들이 이 높은 정상에 오르기위해서는 예언자의 수정구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단순한 거울이어서는 안 된다.

숲이거나 도시거나 사람의 얼굴을 그저 반사하는 영상만으론 부족하다.

당신들이 이 높은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당신들 언어의 혈액이 그냥 B형이거나 AB형이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심장으로 당신의 정신만을 수혈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피를 수혈할 수 있는 그런 혈액형으로, 모든 빈혈 환자에게 피를 나눠주는 사람.

편협하지 말거라.

부족部族의 피만을 받지 말거라.

만년설에 덮힌 외로운 정상에 당신의 발자국을 남기기위해서는 표범과도 같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산의 유혹과 따뜻한 잠을 뿌려치고 오직 한 치라도 높은 바위가 있으면 뛰어올라라.

얼어서 죽을지라도 당신들이 선택한 정상 위의 구름을 꿈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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