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며 농민과 함께 농사를 배우며 살았습니다.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간 길이었습니다. 유기농사와 집짓기, 생태적 삶과 자급자족 공동체는 저에게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10여년 산골짜기의 삶은 기도와 의탁, 젊음과 열정, 연대와 희망, 좌절과 눈물까지. 모든 걸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냉소와 비난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습니다. 이는 농촌과 농민을 등지고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저의 탓이었습니다.
지금은 휴양 중입니다. 후종인대골화증 목디스크 다섯 시간 반 대수술을 마치고 재활 중입니다. 그러나 4~50대 인생의 황금기를 농촌과 농민을 위해 바쳤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 없는 제 삶을 뒤돌아 보게 하는 글을 다시 읽습니다. 영롱한 꽃을 피웠던, 그 날로 돌아가게 합니다.
사랑의 추억은 아름답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추억은 없다
동고동락했던 시간이기에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노동, 봉사와 기도를 바치는,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향기다.
사랑의 추억은 종종 눈물과 함께 찾아온다.
가난한 농민과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이
종종 두 눈에 붉은 동백꽃을 피운다.
오늘은 세 번 울어야 했다. 아침이슬을 깨우며 딴 빨간 고추를 트럭에 실었다. 귀농한 형님이 가져온 사과 한 상자를 뒷좌석에 앉혔다.
“자식들이 명절에 가져올 텐데 왜 사과를 실어요.”
“우리 먹을 사과는 흠집난 사과 또 있어요”
좋은 사과는 이웃에 선물하고 무녀리만 먹는 마음을 하늘은 아실까?
낯익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햅쌀 한 가마 가져오려고 했는데, 추석이 너무 빨라 묵은 쌀 한 가마 방아 찌어 왔어요. 사과는 제가 농사 지은 겁니다.”
“차라도 한 잔 하셔야죠.”
“점심 약속 있어서 지금….”
“저도 농사 진 것 아버님께 드려야죠.”
“블루베리와 오디 효소네요. 맛나게 잘 먹을게요”
“저도 쌀밥 먹을 때마다 아버님 생각할게요.”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장을 하셨던 아버님을 포옹으로 배웅했다. 내 인생의 스승이신 아버님 승용차가 멀어져 간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만큼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왜 일까? 농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그 열정이 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것일까.
고추 건조기가 있는, 아픈 딸과 사는 홀어머니 집으로 간다. 벼들이 고개를 숙인 황금들판이 평화롭다. 평화는 순리를 따르며 고개 숙이는, 낮추는 모습에서만 빛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웬 사과를 가져오셨어요?”
“명절 잘 보내시라고요.”
홀어머니는 마늘 한 접을 농사 지은 거라며 트럭에 싣는다. 친정에 왔다 가는 딸처럼 행복하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토종 진돗개. 새끼 여섯 마리가 칭얼거린다. 한 몸처럼 옹기종기 정겹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네 일상이 될 순 없는 것일까?
출하하지 못한 흠집난 사과를 저온창고에 넣는다. 겨울 이불을 덮는다. 저온창고 싸늘한 한기가 농촌의 현실처럼 차갑다.
일에 지친 형님의 반쪽 된 얼굴이 떠오른다. 몇 번 가슴으로 울었던, 영혼까지 스며든 한탄이 귓가에서 윙윙 거린다.
“수박농사 허리가 휘도록 지었는데. 천 평 밭에서 180만원 받았어요. 종자값 비닐 값만 나왔어요. 일 년 농사 180만원 통째로 남아도 못 사는데, 중 2 아들과 고 2 딸 두 아이와 수박 따서 트럭에 실고 대전 청과물 경매장에 갔어요. 1톤 트럭에 300개 실고 갔는데 경매 28만원 받았어요. 모텔비 외식비 기름 값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누가 그 심정을 알겠어요?”
“그나저나 이제 성당으로 돌아가셔야죠?”
“저도 성당으로 도망가고 싶은데. 빠져 나갈 수 없는 늪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예수님의 연민의 늪은 빠져 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아요. 저도 농사를 배우면서 농민의 어려움과 아픔을 아는데 어떻게 도망갈 수 있어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복음 말씀을 사제 서품 때 일생 좌우명으로 선택했는데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신부님 눈물 흘리게 해서 죄송해요.”
“이런 농민을 위해서 이제 무언가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가공 공장을 계획하고 있어요. 진안에 들어온 지 6년이 넘었으니 이제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아요.”
“농사를 잘 지으면 뭘 합니까. 팔 곳이 없는데요. 방송이 농민을 편들어도 어려운데 오히려 방송이 농민을 벼랑으로 몰아요. 올 추석이 빨라 사과 출하가 많지 않아 10% 오를 거라고 방송에서 때렸어요. 그 탓에 사과도 작년 반값이예요. 방송이 농민들을 벼랑으로 몬다니까요. 사과가 10% 오른다 하니 사과 선물을 안 하는 거예요.”
“그렇게 몇 해 투자한 농자재 값도 안 나오는데 어떻게 살아요?”
“고추, 수박, 사과. 하는 농사마다 똥값이니 그동안 벌어 놓은 것 다 까먹었어요. 개소주집을 허든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왜 자꾸 두 눈에서 뜨거운 이슬이 흘러내리는 것일까. 왜 두 손이 자꾸 눈가로 올라가 이슬을 훔치는 것일까.
한가위 설 명절만이라도 농산물로 선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과 한 상자 5만원이라 합시다. 그 5만원이 통째로 다 남아도 살기 어려운데 농자재 인건비 물류비 빼면 얼마나 남을까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밥이 하늘이다.” 먹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농민 없이 아무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인 농민은 하늘이며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농산물을 사주는 건 농민을 살리는 일이고 하느님과 하늘을 돕는 일입니다. 하느님과 하늘은 농민을 돕는 사람을 도울 것입니다. 농산물을 선물하는 당신이 하늘입니다.
글:최종수(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