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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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열려
  • 신형기자
  • 승인 2024.04.03 14:37
  • 조회수 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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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한국인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 우리나라 신록의 37%가 아사카와 다쿠미의 업적
- ‘잣나무 노천매장법’ 고안…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 집필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제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제

 

[문화=구리남양주시민의소리]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소재 망우리공원에서는 지난 2일 오전 11. 일제강점기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답게 살았던, 조선의 산야를 푸르게 만들고, ‘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를 집필한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1891~1931)의 제93주기 추모식을 한국과 일본이 합동으로 지냈다.

이날 추모식은 정재숙 ()문화재청장, 이동식 현창회 회장, 일본대사관 카와세 가즈히로 공사(광보문화원장),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한국외교협회 신봉길 회장,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운영위원회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원 김영식 위원장,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사무처장과 구리시와 중랑구 망우리공원 문화해설사, 소리꾼 장사익 등 30명 남짓이 함께했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아사카와 다쿠미​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아사카와 다쿠미​

 

이날 추모식은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노치환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했다. 김양동 교수와 노치환 사무총장이 아사카와 다쿠미의 저서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1931) 헌정, 김종규 이사장과 카와세 가즈히로 공사의 대표 헌주에 이어 대금 연주에 맞춰 묵념하므로 경건의 예를 갖췄다.

이어 현창회 이동식 회장을 비롯해 참석한 이들의 헌주와 소리꾼 장사익의 추모곡, 재한 일본인 이마이라 게이코의 아사카와의 형 노리다카가 지은 석굴암과 다쿠미 묘를 낭독했으며, 호리야마의 추도사에 이어 일반 참반인(參班人)의 헌주·헌화·음복 순으로 이어졌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 장사익의 추모곡 헌정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 장사익의 추모곡 헌정

 

이날 이동식 회장은 "우리가 아사카와 다쿠미를 존경하고 사모하고 추모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울 때 와서 많은 애정을 쏟아주고 대변해줬기 때문이다. 한일 두 친구가 만난 자리가 더 널리 알려져서 바다 건너에서도 이런 마음을 같이 나누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축원한다."라고 했다.

카와세 가즈히로 원장은 "한국과 일본의 많은 젊은이가 음악, 드라마, 영화 등 같은 것을 보고 울고 웃음 짓고 같은 음식에 입맛 다시는 것을 보면 아사카와 다쿠미는 굉장히 기뻐할 것이다. 한일 정부 간 관계에는 산도 계곡도 있겠지만 앞으로 한층 더 개선돼나가기를 바란다."라고 화답했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한국과 일본의 음식으로 차린 제사상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한국과 일본의 음식으로 차린 제사상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획기적인 '잣나무(오엽송) 노천매장법'이라는 양묘법을 고안해 조선의 소나무의 양묘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그래서 민둥산이었던 산하를 푸르른 상록수로 입히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임업연구원(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원장을 역임한 조재명 원장은 우리나라의 인공림 37% 그의 작품이며, 광릉국립수목원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라고 평가했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의 소반'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의 소반'

 

그는 1931년 식목일 행사를 준비하다가 과로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그는 죽기 전에 남긴 '조선식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묻혔다가 1942년 망우리공원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른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는 임업에 종사하면서도 조선만의 독특한 작은 밥상인 소반과 목공기구 등 민예와 도자기를 수집해 1929조선의 소반(朝鮮の膳)’1931조선도자명고를 출간했다. 이 책들에는 아사카와가 오랫동안 수집한 조선의 공예와 도자기의 명칭, 형태와 기원을 조사해 정리한 책이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아사카와 다쿠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백자의 사람'

 

그에게는 7살 많은 형 노라다카 다쿠미(浅川伯教.18841964)와 우애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도자의 신으로 부를 정도로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았다.

그의 묘역에 홍림회가 세운 공덕비가 있고,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청화백자추초문각호를 본 따 만든 탑이 있다. 그 탑을 형인 노라타카가 디자인했으며, 1945묘에 핀 들꽃 우리에게 바치고 고이 잠들게 언젠가 찾아와 줄 사람 있을 테니라고 시를 적기도 했다.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 김영식 위원장의 인사말
망우리공원,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 김영식 위원장의 인사말

 

다쿠미 형제와 친한파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 3인은 1924년 경복궁 집경당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개관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발전했다.

야나기는 민예(民藝)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을 철거하려 할 때 이를 강력하게 반대해 타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와 존중을 표한 사람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망우리공원은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과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걸쳐 있는 묘지로, 구리지역에는 아사카와 다쿠미를 비롯해 40명 내외의 근·현대 선각자들이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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