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사랑 '신나라' [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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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사랑 '신나라' [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 송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24 09:57
  • 조회수 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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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부와 세 아이의 사랑이 한 가정의 행복을 넘어 구리시에 사는 많은 다문화 가정을 밝게 하고 그녀의 긍정 에너지가 온 구리시에 널리 퍼졌으면
송재욱 칼럼니스트
송재욱 칼럼니스트

[시민의소리=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남자는 매일 씨에스타 때를 맞춰 시장을 찾는다. 

학교를 마치고 문 닫힌 시장통을 지나는 한 여인을 기다리며. 적도의 뜨거운 열기가 한창때이지만 남자의 열정보다 더 뜨거웠을까. 

자는 회사 업무차 멀리 낯선 나라인 적도기니까지 갔고 그 이역만리에서 너무나 예뻤던 한 여인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구리시 인창동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덥고 작은 나라 중 하나인 적도기니에서 꽃피웠던 사랑 이야기다. 

아직은 약간 서투른 아내 파우스타의 한국말을 돕기 위해 대화에 참여한 남편 이왕재는 아내와의 첫 만남을 얘기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볼 뽀뽀를 가장한 기습 키스. 시장 할머니들이 파우스타 이제 시집가겠네 하고 놀려 대는 통에 애써 아닌 척 피하던 시절... 

파우스타와 이왕재 부부는 결국 뜨거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자며 적도기니에서 첫째 율제를 낳았다. 

결혼식도 못 올린 채로 귀국길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찾아왔다. 

우스타는 용기를 내 남편을 따라나섰다. 

2013년 1월 추운 겨울날 파우스타는 둘째 다은이까지 임신한 채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파우스타의 엄마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나라인 한국으로 딸을 떠나보낼 때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오히려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은 신체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딸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파우스타는 남편을 만날 때 당시 인기 있던 2NE1 같은 걸그룹의 음악을 좋아하고 K-POP 춤을 따라했던 명랑 발랄한 소녀였다.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파우스타는 한국이 궁금했다. 

궁금하니까 가 보자.

내가 선택한 남자처럼 한국행도 내가 선택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남편은 밝은 성격과 흥이 넘치는 그녀의 성격에 딱 어울리는 ‘신나라’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라는 9살, 7살, 3살의 2남 1녀를 키운다.

첫째 율제는 건원초등학교 2학년으로 태권도에 열심이다. 

둘째 다은이는 유치원생으로 엄마 껌딱지다. 

셋째 율찬이는 한국말은 물론이고 적도기니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와 영어까지 3개국 언어를 배우기에 한창이다. 

세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빠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린단다. 

파우스타는 “우리 집은 미술관이에요. 벽들이고 뭐고 온통 아빠 얼굴 엄마 얼굴 낙서로 가득해요”라며 웃는다. 

세 아이들은 너무 귀엽게 생겼다.

아이 셋을 키워 본 엄마들은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한다.

 “힘들지 않으세요?”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말도 잘 안 통했을 텐데.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힘들다는 말은 첫 번째로 잊어버리는 말이다.” 왜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말투엔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도 묻어난다. 

아무래도 파우스타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은 두 부부의 기막힌 사랑 이야기에서 나올 터. 

우스타는 “남편은 나에게 선물이다. 평생 영원히 감사한 마음이다”고 사랑 고백을 한다. 

듣는 사람을 찡하게 한다. 남편도 이렇게 화답한다.

 “내가 가끔 화도 내고 변했다고 느끼겠지만 처음 사랑했던 순간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

듣는 사람 마음을 부끄럽게도 따뜻하게도 하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부부다. 

의외로 요즘 부부는 부쩍 다투는 일도 많단다. 

한국에 와서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고 했더니 아무래도 언어 문제가 제일 컸다고 한다. 

그러면서 적도기니에서 남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줄 땐 3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는데 한국에 와서 한글 익히기에 애 먹고 있지만 남편은 30분을 못 넘긴다고 억울하다는 푸념도 한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한국 여자들 참 대단해요. 어떻게 이런 무뚝뚝한 남자들과 같이 살아 주는 지.”라며 웃는다.
 
식과 요리 문제로 남편과 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한다. 

한국엔 적도기니 고향 음식재료도 부족한데다 무엇보다 엄마가 좋아하는 아프리카 음식을 아이들이 먹질 않는단다. 

결국 남편과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한국음식을 요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서툴다며 미안해한다. 

이제 적도기니에 있는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적도기니엔 인터넷이 잘 안 돼 한 달에 한두 번 전화 통화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땐 햇님 달님과 이야기한다고 얘기하는 대목엔 그녀의 엄마와 고향을 향한 향수병의 깊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무슨 음식이 제일 먹고 싶냐는 질문엔 보통의 주부와 똑 같은 답변이 날아 왔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은 다 좋아요.” 많이 웃었다. 

우스타는 다문화센터에서 한국말을 배우는데 열심일 뿐만 아니라 초중등 학교 다문화 강사와 유투버 방송 진행으로도 분주하다. 

요즘은 구리시를 위한 봉사활동을 염두에 두고 시민경찰학교 강의도 듣고 있다며 제2의 고향에 대한 열정을 뽐낸다. 

사진= SBSNEWS  캡처
사진= SBSNEWS 캡처

아쉬운 것은 중국이나 태국 다문화 가족의 경우 사람이 많아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는데 아프리카 출신이라 다문화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낙담할 신나라가 아니다. 

구리시장에 있는 보이는 라디오가 함께하는 무지개 합창단에 합류해 한국 친구들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단다. 

지역축제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에서 가만히 눈시울을 붉히는 남편과 대조적으로 그녀는 대화 중간 중간에 우스개 소리도 툭툭 내뱉는다. 

마냥 즐거운 어린아이와는 다른 세 아이의 엄마라는 어른스러움이 분명히 묻어나지만. 낯설고 힘든 생활이라고 탓을 하거나 꾹꾹 눌러 참지도 않는다. 

그냥 즐겁고 신나는 얘기들을 먼저 이야기하며 긍정의 힘으로 이겨낸다.

무엇보다 그녀의 곁엔 적도를 함께 넘은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든든해 보인다. 

두 부부와 세 아이의 사랑이 한 가정의 행복을 넘어 구리시에 사는 많은 다문화 가정을 밝게 하고 그녀의 긍정 에너지가 온 구리시에 널리 퍼졌으면 한다. 

적도기니에 있는 엄마를 다시 만나 그 동안의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손 모아 그려본다. 

우스타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한다.

 

송재욱 칼럼니스트 프로필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 정치학과 석사

저서 

1) 송재욱이 만난 구리사람 - 구리구인(九里九人)의 행복이야기
2) 자스민과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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