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자리 [이성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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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빈자리 [이성영 칼럼]
  • 이성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31 19:58
  • 조회수 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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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빈자리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에서-

 

어머니는 18살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 시절 가난한 농촌마을 초가에서 신혼을 출발하여 5남 3녀 8명의 자녀를 낳으셨다.

그 시절 어머니들에게는 하늘이 주시는 대로 자녀를 낳아야만 하였다. 산아제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시대였다.

10명의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그 많은 자식을 위하여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어머니는 평생 길삼을 하셨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베틀을 이용하여 모시와 삼베를 짜는 것이다. 어머니는 모시와 삼베를 짜서 아이들을 키웠다.

하루 종일 베틀에 앉아 베를 자면 2m 정도 만들어 진다. 먹을 것도 없어 죽으로 연명하고 고구마로 식사를 대신하면서 중노동인 베틀에서 삼베를 짜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생선을 머리에 이고 10km 멀리 떨어진 마을까지 다니며 생선을 파셨다. 지친 몸으로 오시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파 마을입구 까지 마중을 나간다.

자식을 보면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무거운 생선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어머니는 미소로 아이를 안아준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최고의 맛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 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았다.
태어나 어머니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기억은 없다.
어머니는 내게 하늘이었고 땅이며 바다였다.

어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 보리죽을 만들고 고구마 죽을 만들어 주면서도 항상 가습아파 하셨다. 자식들을 먼저 먹이고 어머니는 제일 나중에 식사를 하셨다. 자식들이 밥을 다 먹어버리면 어머니는 항상 굶으셨다.

가난한 환경에서 어머니는 외식한번 하지 않았고 여행한번 하지 못하였다. 대구에 계시는 형님 집에 가는 것이 유일한 여행이었다.

세탁기 냉장고가 없는 시대 어머니는 그 많은 빨래를 손으로 하고 냉장고가 없으니 매일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하여야만 하였다. 

어머니!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난다. 

 

이성영

 

이성영 칼럼니스트
이성영 칼럼니스트

이성영 칼럼니스트 프로필

서일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구리문학  활동
전 청심국제병원 이사
현 천주평화연합   경기북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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