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평등을 지향하고 평등은 자유를 구하지 속말아야 [정경진의 정문일침8(頂門一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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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평등을 지향하고 평등은 자유를 구하지 속말아야 [정경진의 정문일침8(頂門一鍼)]
  • 정경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30 08:36
  • 조회수 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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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성내거나 노하지 말라. 그 대신 남이 누구인지 알지 못함을 반성하고 성찰해야
정경진 한의원장
정경진 한의원장

[시민의소리=정경진의 정문일침] 동물의 왕국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국회도 동물국회로 난장판이고 사회도 약육강식이 적용되고 있음을 볼 때 동물의 이야기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넓은 아프리카 평원에  우기가 찾아오면 비가 온다. 

이 비는 만물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여러 다양한 변화가 찾아온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로 말미암아 땅이 메마르고 풀들이 자취를 감춘다. 

비가 오는 우기가 돌아오면 땅이 축축하고 식물들이 자라며 땅이 녹색으로 변한다. 

이때 사슴들은 푸른 초장으로 하나둘씩 모이고 비가 오는 지역을 따라서 사슴들이 더 모이고 모이면 많은 사슴들이 모여든다. 

이때 이러한 푸른 초장에는 수사슴이 암사슴을 기다리며, 푸른 초원의 싱싱하고 건강한 풀을 먹으면서 모여든 암 사슴은 영양이 튼실하고 결혼할 준비를 다 마친다. 

늘이 변하니 건기가 우기로 변하고 땅이 변하니 메마른 초원이 촉촉한 푸른 초원으로 변하고 싱싱한 풀들을 먹은 암사슴은 영양이 충실해져 결혼할 준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수사슴의 영역다툼이나 싸움은 더 이상 아는 이야기이니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하늘이 변하고 땅이 변하니 비로소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자기를 잘 안다는 것은 결국 하늘과 땅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동물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세상도 그렇다”라고 한다면 세상은 각박해지고 할 말이 없다. 

오직 전쟁뿐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본성인 영역다툼과 결혼을 천박하다고 무시한다면 이는 공허하고 이상적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자유는 원래 강자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유에 대한 룰을 만드는 것이 그나마 덜 적은 불공정일 게다. 

자유의 영역이 천박하고 폭력적이라서 욕한다 할지라도 현실이라는 뿌리를 박차고 있다. 

일전에 지인을 만났다. 동학 농민운동을 하는 친구인데 천도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단다. 

그러면서 동학은 인간을 신이라고 한다. 누구나 신이라서 따로 신을 모실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람이 가진 이성적인 모습을 본다면 이 말에 동의한다. 

인의예지가 사람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하는 동양의 철학은 끊임없이 신을 향한 부단한 삶이고 노력하는 삶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부터 귀하고 하늘의 섭리를 닮았다 하니 누구나 귀하고 평등하다. 

사람을 무한한 긍정성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부정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하여 결국은 자유와 평등의 차이를 만든다.  

자는 자유는 평등을 향할 때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이다. 

평등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며, 또한 평등은 평등을 위하여 자유를 구속한다면 인간의 본성과 창의성은 말살될 거라고 말이다. 

자유가 평등을 향하지 않을 때. 평등이 자유를 구속할 때 인간은 스스로의 신임을 포기하고 신을 찾게 된다. 

 내 안의 신성을 찾아보고 사랑하자. 

내가 가진 위대함과 무한함을 사랑하자.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잘 만들었다고 껄껄 웃으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동물들도 하늘과 땅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간도 하늘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늘과 땅에 감사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호르몬의 작용으로 영역이 있고 다툼이 있고 전쟁도 있지만 이 또한 하늘과 땅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 또한 자기만이 아닌 온 세상의 합작품이 아닐까 한다.

요즘 ‘인싸’와 ‘앗싸’라는 말이 있단다. 모르시면 인터넷을 한번 찾아보시라. 

요즘은 하도 빨리 변하여 적응하기 어렵다. 적응하기도 어렵고 바쁘다. 

하늘과 땅이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요즘 공자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자기 피알의 시대라서 그런지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못내 서운해 하고 상처를 받곤 한다. 

나 또한 소심하여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자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걸 서운해 하지 말고 자신이 남을 알지 못함을 염려하고 근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요즘 이 말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성내거나 노하지 말라. 그 대신 남이 누구인지 알지 못함을 반성하고 성찰해야한다.  

항상 끊임없이 반복되는 새로운 날을 접하면서 우리는 아무나 익숙한 반복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항상 우리는 매일 새로운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정경진 한의학 박사 약력

전주 신흥고등학교 졸업
익산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한의학 박사)
전 경기도 한의사회장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총동문회장
칼럼 : 정경진의 정문일침(頂門一鍼)

 

저서 : 복부비만 한의사의 아침운동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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