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과 갈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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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갈 처사
  • 덕보
  • 승인 2019.08.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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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소리=덕보 칼럼] 숙종대왕이 어느 날, 민복차림으로 수원성 고개 아래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 묘 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 하고 물었다.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하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나리에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하니, 갈 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웬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 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씸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 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노 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아전이라고 대왕 앞에서,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 이 양반이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 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능에 자리한 "명능"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 껏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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