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 4개월…"70% 폐사, 올해 희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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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실종' 4개월…"70% 폐사, 올해 희망 없다"
  • 노컷뉴스
  • 승인 2022.05.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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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집단 폐사, 속타는 농민들
월동기 거치며 전국서 꿀벌 78억 마리 폐사
이상 기후+면역력 약화 원인 지목
농민들 "올해 예상 수입 없어…버티기라도 해야"
거래처 납품 위해 다른 양봉장서 꿀벌 사기도
전문가 "새로운 약품 개발…디지털 기술도 도입해야"
지난 10일 경기도 성남의 한 양봉장. 벌통 20여 개가 한편에 쌓여 있었다. 벌통 주위로 꿀벌이 날아들었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양봉을 모르고 보면 많아 보이겠지만, 거의 없는 편이에요. 지난해 70%가 죽었거든요."

양봉장을 운영하는 이태하(63)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씨는 10년 넘게 양봉업을 하면서 올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벌통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꿀벌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개가 넘었던 벌통은 현재 20여 개로 줄었다.

이태하 씨가 벌통을 열고 꿀벌용 단백질을 보여주고 있다. 정성욱 기자
이태하 씨가 벌통을 열고 꿀벌용 단백질을 보여주고 있다. 정성욱 기자

이씨는 "이건 꿀벌이 먹는 단백질인데, 벌이 없으니까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다"며 벌통 뚜껑을 반쯤 연 채 말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원인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씨에겐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이씨는 "양봉장을 하면서 번 돈으로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취업도 시켰다"며 "그런데 올해는 피해가 너무 커서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 기후로 면역력↓ 전염병 겹치며 78억 마리 폐사

꿀벌 집단 폐사로 비어있는 벌통. 정성욱 기자
꿀벌 집단 폐사로 비어있는 벌통. 정성욱 기자

11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월동기를 거치면서 꿀벌 78억 마리가 폐사했다. 양봉 농가는 통상 1월쯤 벌통을 열고 겨울잠을 자고 있는 꿀벌을 깨운다. 먹이를 주면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전국에서 "벌통을 열었더니 꿀벌이 없다"는 신고가 빗발쳤다. 사체조차 발견되지 않다 보니 미스터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분석에 나선 전문가들은 이상 기후와 병해충이 겹치면서 발생한 문제로 결론 내렸다. 벌은 겨울철에 잠을 자며 힘을 모은다. 그러나 지난 겨울 고온현상이 계속되자 봄이 왔다고 착각한 벌들이 이른 활동에 나섰다는 것.

꿀벌들은 예년보다 힘을 빨리 소진한 탓에 지치기 시작했고, 집으로 되돌아올 힘이 없어 그대로 폐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종'이 아닌 인간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이상 기후는 꿀벌의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꿀벌은 꿀을 빨아 먹으며 각종 영양소를 섭취한다. 그런데 지난 여름 저온과 강풍, 강우가 이어지며 아카시아 등 꽃이 피는 시기가 늦어졌고, 그만큼 벌이 꿀을 먹는 양도 줄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응애 등 진드기 피해까지 이어지며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최용수 연구관은 "꿀벌의 사체가 보이지 않으니까 '실종'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벌통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한 것"이라며 "이상기후와 전염병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그저 버티기"…다른 양봉장서 꿀벌 사서 납품하기도

경기도 안성의 한 이동식 양봉장에서 꿀벌이 날아다니고 있다. 정성욱 기자
경기도 안성의 한 이동식 양봉장에서 꿀벌이 날아다니고 있다. 정성욱 기자

꿀벌의 집단 폐사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농민들은 개체수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꿀벌의 활동은 봉군(무리)을 이루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리 속에서 벌은 새로 태어난 벌을 키우거나 집을 지키고, 밖에서 꿀을 따오는 등 각자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올해처럼 집단으로 폐사할 경우엔 체계가 무너지며 처음부터 다시 무리를 갖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씨는 "내년에라도 꿀을 따려면 올 가을까지는 예전만큼 봉군을 복구해놔야 한다"며 "수입은 기대하지도 않고 죽는 벌이 더 안나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양봉장은 거래처에 꿀벌을 납품하기 위해 웃돈을 주고 다른 양봉장에서 꿀벌을 사들이기도 했다.

경남 창원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김강훈(가명)씨는 30년 넘게 한 과수농가에 꿀벌을 납품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집단 폐사로 물량이 부족해졌다. 거래처의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없었던 김씨는 다른 양봉장에서 벌을 사들여 납품하기로 했다. 그러나 1통당 12만원이던 벌통은 이미 20만원으로 치솟은 상황. 김씨는 어쩔 수 없이 개인 돈 2천만원을 들여 400통을 납품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꿀벌이 폐사했다는 피해가 접수됐고, 현재 현장으로 나가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며 "피해 농가에는 지원을 하고 있으며, 재발방지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제약품 개발…디지털 기술 도입해 이상기후 대처"

5월에 접어들며 아카시아 꿀 채집 준비에 나선 한 양봉 농가. 정성욱 기자
5월에 접어들며 아카시아 꿀 채집 준비에 나선 한 양봉 농가. 정성욱 기자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선 단기와 중장기 방안을 모두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방제약품을 개발하는 한편,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이상 기후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연구관은 "대부분 양봉장에서는 방제약품을 준수해서 사용하지만, 특정 약품을 계속 사용하다 보니 응애도 내성이 생긴 것"이라며 "응애는 예방하면서 꿀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약품을 개발·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꿀벌통에 실시간으로 온도와 습도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를 설치해 벌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며 "이상 기후를 관리할 수는 없겠지만,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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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성욱 기자 w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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